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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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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백골부대여 영원 하리
작성자 조칠성 등록일 2013-02-07 11:10 조회수 2,073
     백골부대는 영원 하리

 

                                                     형곡 조칠성

 

오성산과 백암산 사이로 흘러 내리는 계곡을 남대천 이라고 함니다

남한의 최전방에 위치한 남방 북방 한계선

 철책이 드리워져  피아간에  맘대로 드나들지 못한 곳이지요

철원과 강원도 사이 사방거리~ 사창리~ 육단리~ 김화읍 ~토착리~ 문혜리

~태봉리를 연하는 FABA선은

6,25당시 철의 삼각지이며 오성산아래 백마고지인 485,589고지가

있는곳으로 김일성 셍존당시

장교군번 한추럭 과 바꾸지 않겠다는 중요 지형이며 드넓은 곡창지인

철원 평야가 있는곳 이기도 하고 제2의 땅굴도 가까이 있는곳 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남대천이 꽁꽁 얼어 50cm이상 얼어 붙읍니다

군인이며 민간이며 아침식사가 끝나면 남녀 노소 불문

자유스럽게 하루 종일 스케이트를 탑니다 

 그동래 사람들은 밥를 못 먹어도 집집마다 스케이트를 준비하고

그걸 신고 겨울 나기를 함니다

그당시 스케이트는 쓰리 A,전승현 스케이트가 최고 였으며

 선수용으로 썼던 기억 됨니다 선수들은 가급적 그걸 신고 탓 지요

소위(장교) 1개월 봉급보다 비싼것 이었지요

군인들은 혹한기 훈련과 예비시간은 체력단련으로 빙판에서 시작하고

아침 점호마져 이곳에서 함니다 혹한을 극복 하기위한 체력 단련이지요

또한 사단 스케이트 대회를 대비하여 부대장들은 기를 쓰고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함니다

경기는 곧 전투니까요

특히 치열했던 6,25 전쟁터인 만큼 지키는 부대 또한 백골 부대 전통을 자랑 하며

철통 같은 경계태세,그에따른 훈련은 밤낮이 없고 눈 얼음에도 불사 하는법

12월부터 2월끼지 얼음이 얼면 두께가 약50cm까지얼고 녹지도 않읍니다

영호남 사람들은 스케이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탈줄도 몰랐던

1970년도 그 때 스케이트를 탄 상황을 회상 해봅니다

그때 부대 선수가 되어 스케이틀 배우느라 그비싼 스케이트를 구매하여

 쌩 땀을 많이 흘렀던 기억이 남니다

승부욕이 강한 훈련은곧 전투였으며 땀 한방울은 전쟁터에서

피 한 방울과 같은것,

 또한 그때는 국가도 가난했지만 군수 보급품도 귀했읍니다

산에가서 나무를 해다가 빼치카에 불을 때던 군생활,

배가 곺아 잔반을 긁어 먹던 시절 허지만 한치의 땅도 양보 할수

없는 군인정신이 뚜렸하던 사명감에 불타 있었읍니다

그당시 전방엔 거의 철책이 없었고 목책뿐 이었읍니다

가끔

 지뢰가 터지고 총성이 울리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살별한 경계를

섰던 그시기 사람 그림자도 구경 할수 없는 벌판 아니면 산중,

그러나 우리는 두눈 부릅뜨고 전방을 주시 조국 강산을  지켰읍니다

또한 부대장의 투철한 사명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한치의 땅도

양보할수 없다고 북진 통일을 염원한 용장인 부대장의 명령 이었기에

우리는 전투력 향상에 주력하는 한편 운동에서도 불패란 단어를

허용하지 않았읍니다

특히 부대 전투력을 향상키위한 소부대 전술, 일발필살의 사격술 ,그리고

철통같은경계, 임전무퇴의 정신자세가 복무방침 이기도 하였읍니다

특히 전투력향상을 위하여 사격 지도단 장교를 스카웃하여

1,21사태때 김신조 일당이 124군부대 무장공비들에게 단련 시켰던 훈련과정중

주요시한 사격술을 분석하여 우리 수준에 맞는

방어를 위한 하향사격, 공격을위한 상향사격 ,공격간 무장을 하고 사격하는

격동후사격, 근접전투를 하기위한사격, 야간사격술 등을 간부들 대상으로

소집 실시하하는등 간부 정예화 하는 한편 사격합격자에 대한 인사 고과에

반영 하는등 전쟁이 발발하면 즉시 대응 할수 있도록 준비된 부대로 육성 하는

부대장의 책무를 수용하는 강한 백골 부대였읍니다

그즈음

1972년도 DMZ철책선 작업을 위해 사계청소를 (불을질러 갈대밭을 태우는작업)

하던중 한두발의 총성따라 날아온총탄이 우리쪽 작업하고 있는

황대위와 김하사가 적탄에 맞고쓰러쩠다

그곳은 남대천 상류인

백골OP 앞쪽으로 적과 불과3~400M정도의 거리로 (철책이 드리워진 

안쪽 GP불모지) 작업장 이것은 북쪽 지휘간의명령에 의한

저격수의 의도적인 도발 이었다

우리 부대는 즉각응사 하였으며 상호 총격전이 이루워지고

부대장의 명령에 의해

GOP부대 지원 포병대대포가 화집점에 의한 효력사격을 시도했다

아마도 적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을 꺼다

부대는 태프콘 1 상태(전쟁돌발사태)

몇시간이 지난후

피아간에 하나의 충돌 사태로 끝났지만 전군이 긴장한

비상사태에 이르는 사건이었다

군단및군사령부 육군본부 국방부 한미 연합사.남북정쟁위원회

아마도 국회에 까지도 흔들정도의 사건이었다

당시 평화통일을 협상중인 적십자 회담등 야당의 사회주의자들의

드쎈 반박인사건 이기도 하였다

일개 사단장의 작전권 ? 명령불복종?미군의 승락없이 교전했다는

책임론으로 사단장,GP연대장,포병대대장이 경질되는

군 부대로써 사기에 미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북쪽은 땅굴을 파헤치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면서 야누스의 얼굴로

평와 협상에 일관하고 있는줄은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지요

(그후 남파된 간첩에 의거 확인된 사실은

당시 아군이대응하여 소총 사격과 포격으로 적 GP가 파괴되고

 인명피해 엄청 컷으며   더욱 불거질 전면 전쟁이 예상됨과

남측 전투력이 상상외로 강하엿음을 중시

교전을  중지 하였으며 또한 북쪽에도 작전실퍠로

 많은 인원이 숙청 되었다고 한다) 

 

군인 으로써 주어진사명과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도 경질되었던 지휘관들은

영세국가의 정치적인 소용돌이속에 희생되어야했던 그분들에 대하여

송구 스러울 뿐이다

우리는 하루속히 강대국이 되어 작전권을 인수하여 다시는 간섭 받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할것이다

 

그후로

북쪽은 전군요세화 ,전인민 무장화로 남침계획수립등 남침야욕에 불타 있고

1,2사태 때는  김신조외31명의 무장공비를 남파하여 남한을 교란 하더니

이젠 미루나무 사건을 계기로 아웅산 테러, 이어 땅굴 파대기, 천안함 포격

이어서 백령도 포격등 끝임없는 도발은

그네들의 종말을 예견하는게 아닌가 싶읍니다

또한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면서도 파키스탄으로 부터

우라늄을 수입하여 인공위성 아닌 살상 무기인

핵 로켓을 개발 실험 하는등 전쟁도발에 중독 된듯

 개 같은 행동을 일삼고 있읍니다

 

우리정부는 평화를 유지하기위해 대북 지원으로

지속적인 식량지원, 공단조성,남북 철도건설 ,금강산 관광사업등

경제적 자립도를 심어 주었건만 결과는 천안함을 피격하고

백령도를 포격하는등 만행을 저지르면서도  6자회담에도 참석치

않겠다는 무뢰한 행동은 알수가 없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영세국가의

북한 백성들이 가련하다

또한 북쪽 집권자들 자신들을 모르고 날뛰는

행동 이야말로 이해가 않된다

그들의 최후의 종말이 오는게 아닐까

같은 종족으로써 아타까움 뿐이다

 

目下

우리도 전쟁도발을 즉각대응 할수있는 강인한 전투력과 정신무장은

물론 경제적인 압박을 가할수있는 체제로 확립 하여야 될것입니다

정부는 정권 다툼이나 밥그릇 싸움은 그만하고 안보에 집중하고

군 부대는 누가 뭐래도 부여된 책무를 다하고 준비된

다각적 대국민 정신무장이  필요한 때 입니다

 

그러는날

중부전선 남대천에도 적의 도발에 즉각 대응하고 섬멸 할수있는

전투력을 과시하고 충정할수 있는 부대 그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는

지휘권이 확보된 부대로써 軍民 남여 노소 다 함께 더불어 스케이트를

 즐길수 있는 체제로 확립 되어야 될것 입니다

 

                                                             2013년2월2일

 

경질된 명사

백골 3사단장 ; 소장 박정인

GP22연대장; 대령  김여영

GP72포병대대장; 중령 김달형

사단통신중대장; 대위 황명복

 

당시 필자

사단 수색 중대장; 대위 조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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