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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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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의 인생을 뒤 바뀐 국제시장
작성자 김창석 등록일 2015-02-08 20:10 조회수 1,716
첨부파일 철수작전4.jpg(116Kb)원산 송도원 해수욕장입니다.jpg(582Kb)찰수하는 장진호전투.50.11.27-12.11..jpg(173Kb)철수8.jpg(86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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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에 집결하는 피난민들

 

 

 

역전의 용사들이시여!!                                          

 

나의 인생을 뒤 바뀐 6.25 戰爭.                                              

 

우리 집안은 일제 시대부터 동내서 하나 밖에없는 쌀집이였다.(해방후에 두

 

 

집). 고향은 함경남도 원산시 송도원. 소설가 "이광수 작 의 순애부를 집필한

 

고장  명사십리(明沙十里).송도원(松禱園)이고. 유명한 관광지 송도원 해수욕

 

장이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사진이 뜨지않으면 위 해수욕장이 송도원)

 

 

                                                                                

                                                                                         

                                                                                                     

 

있다.  우리 부모님. 우리 10남매를 키우기위해 무진고생을 하면서 삶의 터전

 

을 구축해. 일제의 암혹에서. 해방의 소용돌이 속. 공산 치하에서 우리들을 지

 

 

켜. 보리  고개도 모르게. 우리는 행복하게. 아무 걱정 없이 살아 왔다. 6.25전

 

쟁도 마지막  통일의 눈앞에서. 중공군의 개입으로. 그 처참한 장진호전투(長

 

 

津湖戰鬪)의.   美해병1사단의 전멸위기에서 극적으로 후퇴작전에 성공 .흥남

 

철수작잔의 교두보를 구축.  역사적인 흥남철수작전을 성공리에 마무리. 오늘

 

의 "국제시장"영화까지 탄생 시켰읍니다.

 

 

 

                 장진호 전투에서 철수하는 미군들 (사진이 뜨지 않으면 위 철수하는 그림참조)                                            

 

         

 

흥남철수작전을 1950년 12월 15일에서 12월 24일까지 열흘간 동부전선의 美

 

國 10 군단대한민국 1군단흥남항에서 피난민과 함께 선박편으로 안전하

 

 

게 철수시킨 유래없는 작전인데.우리 원산 철수작전은 이보담 빨리.1950년    

 

                                                                                       

12.6일 시작되었지요, 우리 가족은 50년 12월5일밤.피난 나올 보따리를 준비.

 

 

만약을 생각  아버님께서 각자에게 얼마간의 돈을 허리에 차게 했지요. 12월6

 

일 새벽에 아침먹고 .각자 짐보따리를 지고. 집은 할머님께서 혼자 남겠다고

 

 

우겨. 부모님.형님 형수님 남동생 둘. 여동생 셋.모두 9명이. 人波속에 뭍어.원

 

산부두로 정신없이 흘러 왔습니다. 영화속의 흥남 피난민 행열은 덜 실감이 남

 

 

니다. 여자들의 머리에는 크고 작은 보따리. 남자들은 등짐을 젔는데. 넓은 길

 

가가  인파에 휩 싸여. 여자들의 머리에 진 짐 보따리가.모두 사람들의 머리위

 

 

로 굴로. 좌 우의 하수구로 떨어 지는 광경이 눈에 헌합니다. 이런 광경. 생에

 

두번 다시 볼수 없겠지요.....부두에 도착할때는 머리에 진 보따리는 하나도 없

 

고  등에 진 보따리만 있었지요.

 

 

 

 

                부두에는 군인들이

                                                      

 

 

 부두에는 미군. 한국군이 배치되고 앞에는 철조망이 쳐 있어 접근이 안되며.

 

바다에는 美상선 victory(빗터리)호 떠 있고. 부두에는 美 LST와 작은

 

 

 선박들에 피난민들이 타고 빗터리상선에 접근. 구물 사다리를 기여 올라가는

 

광경이 눈에 띄입니다. 부모님은 우리 남자 셋(형님과 바로 밑동생)만이라도

 

 

                        필사의 구름다리 오르기

 

 

 먼저 떠나라 하기에. 형님은 우리를 대리고 부두 뒷쪽으로 이동. 철조망을

 

넘어 간신이 美 상선 빗터리호에 승선.화물칸 지하 3층에 몸을 실었습니다.

 

 

                        배 화물칸 안의 모습(그 나마 운이 좋은 피난민)

 

 

高 3 일때라 판단이 흐려. 걸어서라도 부모님 뫼시고 피난 나와야 했는데

 

너무 후회스러운 . 불효자로 반평생 살아 왔습니다. 이것이 영원한 이별 일줄

 

 

야....부모 동생들과 혜여 젖다는 죄 의식없이. 남녀 노소의 아비규환(阿鼻叫

 

喚) 지옥속에. 12월6일 상선은 원산부두를 떠나. 일본으로 간다는등 말이 많은

 

 

에. 정신없는 새우잠에  눈을 뜨니. 배는 부산 재일 부두였습니다. 배 고픈것

 

은 고사. 물도 얻어먹기 힘둔 가운데 12월의 혹한속에 추력에 실려. 부산진의

 

 

창고에 수용.역사적인 제 2의 인생이 시작.고닲은 피난시절이 시작됩니다.

 

하루 셋끼 주목밥의 배 고픔을 市에서는 부산 부두노동자로 취업. 수천명의

 

 

피난민들이. 부산의 제1.제2.제3.제4부두.부산진 부두등에서. 어마 어마한 물

 

동의 美國의 보급 작전에. 우리 피난민들. 生 처음 먹어 보는 "간주메"의 영양

 

 

에 건강을 유지 했습니다. 다시 한번 미국의 원조작전에 감사 드립니다.

 

부두의 뒷구멍에서 쏟아저 나오는 형형 색색의 전쟁물자가 피난민들의 생활

 

 

터인 "국제시장"에서 전쟁시의 부산의 경제 부흥과 월남 피난민들의 생활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부산부두 노동자들의 출 퇴근의 장관. 전시

 

 

에만 볼수있는 生存의 전투였습니다. 당시에 월남한 남자들을 마나려면.부산

 

두에,  그래서 부사 제1부두 입구의 노동회관 앞에는 만날수 있을까? 남녀

 

 

소.어머니들. 여인네들로 매일 人山 人海를 이르웠지요.  거기서 우리 3형제

 

는  해방직후  월남한 큰누님 작은 누님을. 극적으로. 밤일하고 나오다 노동회

 

 

관 앞에서 우리를 찾는 큰 누님을 만날 행운을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두앞

 

00 산의 난민촌(하꼬방) 에서 생활하다. 52년도에. 고향의 부모 동생을 만나기

 

위해. 간

 

  난민촌의 모습

 

 

부후보생으로 입대. 29년간의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영화에서 처럼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또 새로운 세계를 보고픈 생각에 베트남 파병을 자원. 베트남의

 

 

억을 가슴속에 담았지요. 또한 남북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은 혹시나 부모

 

생  소식이나 들을까.KBS 주변을 혜매던 역사적인 국민들의 갈망과 흥분.

 

열기

 

 이산가족 상봉

 

 

는  영화속의 그대로. 저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훗날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

 

는  저 보담 선배님들이 많아. 아직 차례가 되지 않았내요.....

 

 

                        

가족 찾기

 

 

이산가족 상봉

 

                                                                                        

                     

                                                                 

국제시장 영화 관람은 너무나 우리 가정의 실정과 같아. 집 사람도 이 몸도

 

흐르는 눈물 억제하기 힘 드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영화관에서 기자들   

 

 

과의 대화에서 손 수건 몇장 준비 하셨나의 질문에 서너장 준비했다는 여성

 

스러운 어머님상에 호감이 감니다요.....

 

 

 

벗들이시여!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사항은.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 모를 대

 

한민국을 위해 즉각 육 해 공군을 파견.흥망(興亡)의 절벽(絶璧)에 놓인. 우리

 

를  지켜준  미국 트루만 대통령에게 국민의 한사람으로 고마움을 올림니다.

 

 

그리고 아무 연고도 없는 이국의 땅. 이나라에서 목숨을 잃은 미국의 젊은 청

 

년 5만 여명의 영령(英靈)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시여!!  안보(安保)의 보장없는 민주주의. 경제대국은

 

허구이며. 동족상잔이라는 비극적인 제2의 6.25가 없도록 철통같은  안보태세

 

와 국방력의 재무장이  정비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까운 청춘을 조국을 위

 

 

 

                 영화관에서

 

                                                                       

 

                                                                       

                                                 

 

 

목숨 밭인  호국의 영령들에게 깊은 애도를 보네며.그대들의 애국적인 조국애

 

가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며. 영원 불멸(永遠 不滅)의 혼(魂)이 되였습니 다.

 

  

                               43 동기회 회장 김 창 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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