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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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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배에서 사는 어느 노인과의 대화
작성자 김석인 등록일 2014-05-22 18:06 조회수 1,928

요즈음 우리나라는 진도 앞바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아직까지도 온 나라가

침통함에 빠져 있다.

세월호는 평소 불안한 상태로 운항을 계속 하고 있었으며 결국은 우리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이 참사를 불렀다고 할 수 있겠다.

세월호 참사의 주범(主犯)은 돈에 눈이 멀어 안전 관련 법규를 내 팽개치고 선박을

시한폭탄으로 개축해 만든 청해진해운에게 있다.

자기 살기에만 바빴던 선장과 선원들의 한심한 행태와 도덕 불감증과 관계당국의 안전관리

소홀과 구조시간을 허비해 초기 대응 혼선도 문제가 있다.

총체적으로 내탓이요..누구의 잘못도 탓할 수 없는 평상심 내탓이다.

비탄에 빠진 유가족과 국민들이 하루빨리 슬픔을 딛고 힘을 합쳐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앞장섰으면 좋겠다.

이 기회에 600여 년 전에 썼던 주옹 설(舟翁說) [권근(1352~1409)]이라는 고전 하나를

감상해보고자 이 글을 옮겨 본다.

이 노인과 같은 지혜를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옹 설(舟翁說) /[권근(1352~1409)]

 

어떤 사람이 노인에게 물었다.

"영감님은 늘 배에서 사는데 어부로 보자니 낚싯대가 없고 장사꾼으로 보자니

물건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손님을 실어 나르는 사공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늘 물 가운데에서 오르내릴 뿐 손님을 실어 나르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배 하나에 의지해서 위험한 물에서 사시니, 바람은 미친 듯이 불고 물결은

놀란 듯이 일어 돛대가 기울고 노가 부러져서, 혼백이 흩어지고 몸은 떨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어 지극히 위험한 지경인데도, 영감님은 오히려 이를 즐기는 듯 멀리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려 하니, 무슨 까닭인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했다.

 

"당신은 이런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시오? 사람의 마음이란 변덕스러운 것이어서,

늘 육지 같이 평탄한 곳에서 살다 보면 그것이 몸에 배어서 도리어 방심하기 쉽고,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면 갑자기 두렵고 떨려서 어쩔 줄을 모른다는 것을 말이오,

무서우면 경계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도리어 안전하지만, 안전하다고 해서

방심하게 되면 반드시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나는 편안한 곳에서 안심하다가 스스로 위험에 떨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위험한

곳에서 살면서 늘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 안전하기를 바라는 것이라오."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게다가 배라는 것은 고정되지 않고 물위에 떠 있는 것이라 어느 쪽이든 무게가 쏠리게 되면

자연히 기울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배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하고도, 배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내가 중심을

잡아 주면 배는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풍랑이 거세더라도

배가 뒤집힐 염려가 없게 되지요.

그러나 풍랑이 아무리 거세다고 한들 어찌 내 마음의 평정까지 어지럽힐 수 있겠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면 세상이란 하나의 거대한 파도요, 인심이란 또한 거대한 바람이오,

나의 보잘 것 없는 몸이 세파에 시달리며 아득히 표류하는 것이 작은 배가 넓으나 넓은 바다

위에서 표류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런데 내가 배에서 세상 사람들을 바라보니 평상시에 편안한 것만 믿고 어려움이 있을 때를

생각하지 않으며, 욕심만 쫓을 뿐 나중 일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소.

그런데 당신은 이것을 걱정하기는커녕 도리어 나를 위태롭다고 생각하니 어쩐 일이오?"

말을 마치자 노인은 뱃전을 두드리면서 노래했다.

 

아득한 강과 바다 멀기도 한데

빈 배를 띄워 한가운데로 들어가네.

달빛만 싣고 홀로 떠나는 마음이여

이 한해도 한가로이 마치리로다.

 

노인은 나그네에게 작별 인사를 마치자 두 번 다시 돌아다보지도 않고 말없이

떠나가 버리고 말았다.

 

 

권근(權近 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성리학자로 문장이 뛰어났고 신흥 사대부 50여명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왕명으로 동국사략(東國史略)을 편찬

저서로 [양촌집(陽村集), 입학도설(入學圖說)]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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