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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한민국의 군 정신무장은 어느 정도일까? 정신무장은 어느 정도일까?
작성자 김창석 등록일 2016-07-23 21:15 조회수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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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의 용사들이시여!



먼저 이 글을 읽고 눈물이 앞서고 육군 대령으로 군복무 29 년을 하고 제대 하였

지만. 왜 가슴이 이리도 아픈지요.보병으로 주특기 1542 지휘관이다. 소대장으로

임관 전방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으로 나의 직무에 부꾸럼없다. 그러다 보니 나의


휘하 장병들은 엄한 지휘관 밑에서 고생 많았음을 인정 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일본 소좌의 군인정신.부하애와 미듬에대한  무사도 정신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

집니다. 동굴에있던 군인들도 먹을 음식을 네려 보내면서 투항을 권유 했지만 끝

끝내 항전 수류탄으로 자결하면서 적(미군) 지휘관에게 고마움을 표시


한 무사도 정신. 군인으로서 본 받을 일입니다. 우레에게도  화랑도 정신이 있지

만. 작금의 정세와 위정자들을 위해 목숨  밭일   군인이 얼마나 있겠는지요....  

모두 각성 음미해 주시기를 바람니다. 작은 섬 나라 일본이 강대국 미국을 상대로

먼저 선전 포고를 하였으니 그 기개( 氣槪)무사도 정신이라 할까요. 너무나 우리

국민들 일본을 약잡아 봅니다. 무소운 일본을  경계 대비 하여야지요...... 

                         

               43 동기회  회장 김 창 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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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명신장군 묘역에서





            엄마! 전쟁 났어요! 어떻게 해?   (우리 한국을말한것 같음)



                    미국청년 향한, 마군사령관의 역설



일본군 육군 소좌의 최후 부탁 "동굴 안에는 유능한 30명의 청년들이 남아있다.


그들을 부디, 일본을 위해, 세계를 위해 살리고 싶다" - 펀드빌더(회원)





<미국 청년들이여! 동양에는 훌륭한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는,

그대들이 상상하지 못할 훌륭한 청년들이 존재한다. 그런 청년들이 있는 한, 일본

은 머지않아 세계의 盟主가 될 것이 틀림없다. 미국 청년들이여 분발하라!>





유황도 전투를 치른 美 제5함대 사령관 '레이몬드 스풀루언스' 대장이 한 말이다.

그는 전후에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이러한 취지로 역설했다. 그의 역설 배경에는

아래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



격전을 거듭하며 막대한 희생 끝에, 미군이 유황도를 점령한 다음 날(1945년 3월

26일경)의 일이었다. 유황도 바위산의 한 동굴(穴)로부터 심한 부상을 입은 일본

육군 소좌(소령) 한 명이 항복을 알리는 흰 수건을 들고 힘겹게 밖으로 나왔다. 일

본군 소좌 이렇게 말했다.



'사령관은 안계신가? 동굴 안에는 유능한 30명의 청년들이 남아있다. 그들을 부

디, 일본을 위해, 세계를 위해 살리고 싶다. 죽이려면 나를 죽이고 그들은 꼭 살려

달라. 일본군 소좌를 지켜보던 레이몬드는 '당신과, 당신 부하 모두를 살려주겠

다'고 말했다. 그러자 일본군 소좌는, '상큐'라는 말을 남기고 절명했다. 미군들은,

일본군 청년들이 남아있는 동굴 안으로 담배와 통조림을 던져 넣어주며 밖으로

나올 것을 지속 권고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오지 않고 저항하며 두 달가량을 버틴

끝에, 몇 명이 아사한 후, 나머지는 수류탄으로 자결했다.


수류탄 폭발 소리를 듣고 레이몬드는 급히 동굴로 뛰어갔다. 동굴을 지키던 미군

병사가, 레이몬드에게 편지를 건네주었다. 편지는 각각 영어와 일본어로 쓰여져,

동굴 입구 안쪽에 놓인 상태였다고 했다. 편지는 레이몬드 사령관 앞으로 되어 있

었다.  <각하께서 저희에게 베풀어주신 호의와 친절에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드

립니다. 넣어주신 담배와 통조림은 정말 감사드립니다. 많은 배려를 해주신 것에

거듭 감사를 드리지만, 권유에 의한 항복은 무사도 전통에 따라, 응할 수 없음을

말씀 드립니다. 이제 식수마저 완전히 떨어져 금일 오후 4시를 기해, 전원 자결로

세상을 하직하고자 합니다. 끝으로, 귀군의 무운장구를 빌며 이만 줄입니다.



昭和 (소화)二十年 五月 十三日

일본 육군 중위 아사다 신지(殘田眞二) 올림

미군 사령관 殿>

(1995년, 일본月刊 '조국과 청년' 6월 기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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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前구르카 용병의 증언



<우리는 세계 최강 용병이다. 2차 대전 때 영국의 용병으로 있으면서, 말레이軍

을 맞아 세 시간 만에 그들을 격파하고, 인도軍에 대해서는 하루 만에 그들로부



터 항복을 받아냈다. 하지만, 일본 정규군과 맞붙게 된 전투에서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혹독한 싸움을 했다. 일주일 동안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계속 싸웠는

데, 우리 병력의 절반 이상이 전사할 만큼 처절했다. 그런 사투는 난생 처음이었

다. 용감한 적군에게 존경의 마음이 생겨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투 후, 玉

碎(옥쇄)한 일본군들 모습을 살펴보고, 우리는 한 번 더 놀랐다. 일본군의 무기가



너무나 빈약했고, 지닌 식량은 하나 같이 변변한 것이 없었다. 한 줌 쌀이 전부였

다. 일본군들은 하나 같이 뼈만 앙상한 상태였다. 전우가 죽었어도 눈물 한방울

흘려본 적 없는 우리는, 이런 일본군들 모습을 접하고 나서 그 자리에서 모두 울

고 말았다.>



 P.S)

태평양 전쟁 당시 日本軍 사망원인 중, 가장 많았던 것은 굶주림(餓死)이었다. 일

본군 전몰자 약 250만 명 가운데, 60% 가까운 140만 명가량이 餓死한 것으로 추

정된다. 쌀(米) 등 물자부족으로 인한 보급품 단절과, 미군에 의한 봉쇄(포위) 등

이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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