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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건국 대통령 이승만 재평가 . 국가 발전 원동력 삼아야 !
작성자 김창석 등록일 2015-07-22 22:21 조회수 1,426

 
역전의 용사들이시여!

나라의 건국 대통령이 없는 나라가 후진국 일수록 많다.

이 나라의 뿌리는 ? ...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역사를 잊고 사는 국민들은 역사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고 같은 고통을 맛보아도 싸다. 역사

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국민들은  국민을 위한 나라를 갖지 못할 것이다. 한심하고 부끄럽다.


하루 빨리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재평가 하여.    국가 발전에 원동력  삼아. 통일을 맞

이하여야 한다.                                  43 동기회  회장  김 창 석 올림



[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jpg


             1950.9월29일서울 탈환 환영대회.중앙청.이대통내외및 맥아더원수




건국 대통령 이승만 재평가 … 국가 발전 원동력 삼아야”

                      박진 전 의원이 본 하와이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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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0주기 기념식이 18일(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의 그리스도


교  연합감리교회에서 열렸다. 박진 전 의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인 이인수 박사와 부

인  조혜자 여사, 김창원 이승만박사 숭모회 회장(왼쪽 둘째부터)이, 이 전 대통령 동상 앞에

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박진 전 의원]





18일(현지시간)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0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하와이 6·25 참전 유공자회 회원들.jpg


18일(현지시간)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0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하와이 6·25 참전 유공자회

회원들.


18일 오후 5시(한국시간 19일 낮 12시) 하와이 호놀룰루의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에서 우남

(雩南) 이승만(李承晩·1875~1965) 전 대통령의 서거 50주기 기념식이 열렸다. 112년 역사

를 지닌. 이 교회는 한국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 처음으로 세운 교회다. 1913년 초 하와이에

정착한. 이 전 대통령이 독립운동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50주기 기념식은 ‘건국대통령우남


1910년 6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jpg

                                   1910.6월 미 프린스터 대학교 박사학위수여식


이승만박사 숭모회’(회장 김창원)와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회장 박진), 이승만

연구원(류석춘 교수), 하와이 한인단체 등이 공동 주최했다.



이 전 대통령의 유가족 대표인 이인수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께서 끝내 꿈에 그리던 조국으

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와이 마우나라니 요양원에서 안타깝게 마지막 통한의 숨을 거두신 것

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며 “서거 50주년 추모 행사를 계기로 이승만 대통

령의 숭고한 건국정신과 나라 사랑하는 자기희생 정신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려졌으

좋겠다”고 말했다. 김창원 숭모회 회장은 “자기 나라 역사를 알지 못하는 국민은 미래가

없 다. 그것은 나침반이 없는 배와 같다”며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숭고한 건국정신을

기하고 그의 역사적인 공과를 올바르게 재평가함으로써 미래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

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1948년 7월 24일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왼쪽) 1948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정부 수립식.(오른쪽).jpg


              사진좌. 48년7.24.취임 선서,右는 48년 8.15.중앙청에서 정부수립식 광경


이호(통일 한국리더십아카데미 대표) 목사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혼란

은.건국정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조국에 대한

자긍심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역사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조선 민족

의  우수성을 파악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운 최초의 지도자가 .이승만이었다”며. 이 전

통령에 대한 왜곡된 시각과 악의적 폄하를 경계했다..





1951. 전선을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에게 꽃을 전달하는 소녀..jpg


                                 1951년 전선시찰시 소녀한데서 꽃다발 증정



하와이로 망명한 60년 5월 29일부터 서거(65년 7월 19일) 때까지. 5년2개월간 살던 하와이

에는. 이 전 대통령의 발자취가 서려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을 떠날 때만 해도. 망명 생활

이  길어질 줄 몰랐다. 하와이에서 2~3주 정도 쉬다 돌아갈 생각이었다. 짐이라곤 트렁크 2

개와 타자기·약품 등을 넣은 가방 2개가 전부였다.



이 전 대통령이 살았던 호놀룰루의 마키키 스트리트의 목조 주택은 소박했다. 이 전 대통령

부부는 이곳에서 곤궁한 삶을 살았다고 김창원 회장은 회고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인들에게

한국 땅을 밟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며 “걸어서라도 고국에 가겠다”고 밝혔다 한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의 귀국을 부담스러워한 .박정희 정권이 그의 귀국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

다.  이에 대해 김종필 전 총리는 7월 17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증언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승만 박사의 환국을 막았다는 얘기들이 있는데. 이는 과장됐거나 잘못됐다”며. 이 전 대통

령의  병세가 악화돼 항공 여행을 할 수 없어 귀국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귀국이 좌절된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그가 숨을 거둔 마우나라니 요양

원은 50년에 개원할 때 모습 그대로인 3층짜리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그의 마지막 숨을 거둔

202호실 병실 창밖으로는 한국 방향 태평양이 펼쳐져 있었다.





크기변환_22사단창설(양양비행장 이승만대통.jpg

                           1953년 보병22사단 창설식. 양양 비행장 


이번 하와이 행사를 통해.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 전 대통령이 시대를 앞서가는 선각자였으며
영광과 굴욕의 역사를 몸소 겪은 훌륭한 민족의 지도자였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이 전

대통령은 반세기 전 서거했지만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정신과 자유민주주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진정한 건국은 평화적인 남북통일로 완

성해야 한다.    하와이=박진 건국대통령  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 회장




데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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